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누트 볼 (문단 편집) == 아프리카를, 그리고 남수단을 사랑한 사나이 == [[콩고민주공화국|자이르]] 출신의 [[디켐베 무톰보]]가 그랬듯 그 역시 [[아프리카]]를 사랑한 사나이였다. NBA 선수로 수백만 달러를 벌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한 마누트 볼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단 공화국|수단]]사람이 되었지만 그의 조국 수단은 이슬람계 이주민과 토착 원주민이 남북으로 갈라져 다수인 [[수단 공화국|북부 이슬람계]]가 [[남수단|남부 토착 원주민]]을 무력으로 강압통치하던 나라였다.[* 당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는 샤리아 폭정으로 수단의 비무슬림과 세속주의자를 전부 학살하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알바시르는 배신을 당하여 축출되고 새로운 군부는 세속주의를 주장하여 국교까지 폐지하였다.] 남부 원주민인 [[딩카족]]의 후예인 볼은 선수시절부터 고국의 가족과 내전으로 시달린 난민을 위해 난민캠프를 적극 지원하고 자기 연봉의 대부분을 대는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국제 사회에 수단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 실태를 알리며 국제 사회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수단 이슬람 정부에서는 그를 반체제 인사로 분류해 살해 위협과 탄압, 연금 조치 등을 수년간 이어가기도 했다. 이 때 조국에 돈을 보내느라 개인적으론 파산 상태였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국을 돕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직 풋볼 선수와 복싱 이벤트를 갖는다거나 아이스하키(…)팀과 일일 계약, 승마 선수 활동 등 광대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4년 택시 기사가 만취 상태인 것을 모르고 택시를 탔다가 사고를 당해 사망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원래 부상이 많던 몸이라 죽을 가능성이 높았으며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병원비를 댈 능력도 없다는 걸 안 워리어스 시절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사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국을 위해 애쓰던 볼은 안타깝게도 남수단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2010년 세상을 떴다. 그로부터 약 13개월 뒤인 [[2011년]] [[7월 9일]], 볼이 이어온 공헌이 빛을 보며 남수단은 수단으로부터 독립했다. 같은 [[딩카족]] 출신 농구선수 [[루올 뎅]]이 7살때 아버지가 성직자라는 이유로 수단 정부로부터 탄압받아 [[이집트]]로 망명해있던 시절 마누트 볼을 만나 농구 지도를 받았고 13년후 그는 전체 7위로 시카고 불스에 입단해 NBA 역사상 두번째 수단 선수가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참고로 루올 뎅은 농구 내외적으로 모두 마누트 볼을 매우 존경한다. 볼이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 13년 후, 생전 볼의 노력에 힘입어 [[남수단]] 농구 국가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을 하는 데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